오랜만에 돌아온 브린디쉬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렌드는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애석히도 그다지 느껴지는 감정은 없다. 브린디쉬. 태어난 곳, 고향. 좋은 추억만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동생을 잃어버린 기억, 부모님이 돌아가신 기억. 그리고 피로 물들어있는 청소년기.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라앉혀놨던 앙금들이 다시금 물 위로 떠올랐다. 이렌드는 고개를 휘휘 젓고 가디건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었다. 갈라진 도로의 끝, 떨어질락 말락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그는 저 멀리 폭격을 맞아 무너져있는 아폴로 주식회사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평화로웠지만 삶은 전쟁이었던 시절, 아무도 모르게 기척을 숨기고 어둑한 밤마다 출입했던 그곳이다.

…다이버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용무는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야 할 것 같다.



눈에 보이는 처참한 광경에 이렌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만 같은 정도의 부상을 입은 사람들, 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 도시는 이들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내렸다. 그런 이상 어차피 죽음이 예정된 사람들이다. 찬란한 문명은 뭐고, 그렇게 자랑했던 드론은 또 뭔지.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브린디쉬의 수뇌부는 미리 사태를 파악하고 제일 먼저 아라라트 쪽으로 도망쳤다고 했다. 이렌드는 자신이 만약 이들과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물이 났다.

챙기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챙기다가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잘못될 수 있다는 세상의 진리를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이렌드는 능력을 사용해 빠르게 무너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전기가 나갔으니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는 당연히 못 쓰겠고. 잠시 고민에 빠진 이렌드는 천천히 기억을 되짚어 온전했던 건물의 구조를 떠올려내기 시작했다. 비상계단까지 훼손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만. 발걸음을 재촉해 기억 상 계단이 있었던 쪽으로 향했다.

끼이익.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는지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위로 가는 계단은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그것을 올려다보던 이렌드는 고개를 내렸다. 아래로 가는 계단. 위쪽이 저렇다면 아래쪽도 언제 땅이 꺼져버릴지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봐야 한다. 어차피 위층에는 원하는 정보가 없을 터다. 애초부터 아폴로 주식회사의 지하야말로 이렌드가 몇 년 동안 눈에 새기며 호시탐탐 노렸던 곳이었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손에 묻혔음에도 지하만은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그 일에 대한 것은 지하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렌드는 조심스럽게 아래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중심을 잃을 뻔한 건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다. 긴장감에 빨라진 심장 고동을 애써 진정시키며 천천히 내려갔다. 계단의 끝에는 관련인 외 출입 금지 구역, 이라 쓰인 안내문이 붙은 철문이 있었다. 자물쇠도 함께. 지니고 있던 총을 꺼내 자물쇠를 여러 번 쐈다. 총격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밖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이렌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그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자물쇠가 힘없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렌드는 총격을 멈추고 총을 다시 옷의 안쪽에 숨겼다.

지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는 어쩐지 아까의 철문이 열리던 소리보다 몇 배는 더 기분이 나빴다. 안쪽은 평범한 창고로 보였다. 드론으로 추정되는 기계들이 바닥에 버려져 있었고, 이외에도 용도를 추정할 수 없는 것들이 이곳저곳 널려 있었다. 이렌드는 더 안쪽으로 향했다. 제일 끝쪽에 번호키가 달린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는 단검을 꺼내 문틈에 억지로 끼워 넣었다. 기계식 잠금장치가 제일 따기 쉬운 류라는 걸 몰랐던 걸까. 생각보다 쉽게 열리는 문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문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또 하나의 계단. 아까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상도 아니고 지하다. 무너진다면 그대로 즉사겠지. 이렌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이 정도의 위험을 감수할만한 정보가 이곳에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끝에는 또 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약간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코를 부여잡고 이렌드는 열려 있는 틈으로 손을 뻗었다. 확 젖혀버린 문 안은 자료실이었다. 종이가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고, 한 구의 시체가 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죽은 지 오래된 모양이다. 부패 정도가 심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는 노트. 이렌드는 그것을 주워 읽어보았다. 첫 장은 본인으로 보이는 이름, 소속, 그리고 무엇을 명령받았는지가 쓰여 있었다. 이 자료실을 지키는 것. 다음 장부터는 평범한 일기였다. 뒤로 가면 갈수록 글씨체는 떨리고 있었고, 헛것을 보는 내용도 쓰여 있었다. 이렌드는 작게 혀를 찼다. 잔인한 놈들. 뒤의 내용은 볼 필요도 없었다. 노트를 내려놓고 이렌드는 사인을 진단을 내렸다. 아사.

이런 것에 한눈 팔려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렌드는 자료실의 안쪽으로 들어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묶음철을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했다. 찾고 있는 건 단 하나다. 캐슬라 부부의 살인사건. 묶음철의 맨 앞쪽에는 각기 다른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1급 비밀, 2급 비밀, 3급 비밀. 이런 식으로. 과거, 아인실의 실종에 대한 정보를 찾았을 때도 비슷한 문서를 봤었다. 그 건은 1급 비밀문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림자와 관련된 사건이라 브린디쉬에 혼란을 가져오기 위해 훔쳐낸 문서라고, 당시의 정보 제공자에게 들었었다.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이렌드는 드디어 찾던 것을 발견했다. 1급 비밀문서. 부모님의 이름과 지금은 버린 자신의 본래 성이 쓰여있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왔다. 진실을 요구했다가 무참하게 무시당했고, 이걸 알아내기 위해 아폴로에서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기까지 했다. 이렌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호흡하고, 느릿하게 첫 장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캐슬라 부부 살인 사건. 새어나가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자리에 있었던 기자 때문에 신문에 나긴 했지만, 대부분 곧바로 회수했다. 아마 사건이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기자 또한 협박과 고문 끝에 사건에 대해서 입 다물고 있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피의자가 브린디쉬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들의 아이인 만큼 철저히 해야 한다. 사실 피의자가 아니라 확실한 범인이다. 다행인 것은 범인이 범행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범인의 이름은…」


거기까지 읽은 이렌드는 묶음철을 떨어트렸다. …차라리 알지 않는 게 나았다. 알지 않는 게, 모르는 게, 평생 아무것도 모른 채로 사는 게 나았다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동명이인이라 하기에는 문서에 쓰여있는 모든 설명이 이렌드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그 아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 아이가, 얼마나 상냥하고 정이 많고, 강한 척하면서 여린 면이 있고, 제멋대로이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얼마나 좋은 아이인데. 내가 봐온 그 아이는 얼마나, 얼마나.


내 삶의 빛이었는데.



「범인의 이름은 몬드 가비아.」








묶음철을 가지고 나온 이렌드는 멍한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자신들과는 다르게 멀끔한 인상을 한 이렌드의 모습에 길거리의 사람들은 의문을 품거나, 억울함을 표현하거나, 분노의 방향을 이렌드로 돌리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이렌드의 분위기 탓일까. 접근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멀리에서 욕지거리를 몇 마디 뱉을 뿐이었다. 그것을 선명하게 들으면서도 이렌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다. 목적지는 자신의 집이었다. 평범한 가정이 아닌 아폴로 주식회사에 입양되고, 아이가 아니라 임무 수행원으로 키워지며 살았던 그 집이 아니다. 아주 예전 부모님과 아인실과 함께 살았던 그 집으로.

집은 보호 조치를 요구해놨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자신마저 고아원으로 보내지면서 버려진 집에는 원래 종종 노숙자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이렌드가 아폴로에서 일하게 되면서 집의 소유권을 부탁했다. 아폴로는 그 요청을 들어주었고 노숙자들을 모두 쫓아내 주었다. 집에 돌아온 이렌드는 가장 먼저 집을 청소하고, 한참 동안 앉아있기만 하다가 그대로 나가버렸었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집 열쇠는 항상 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러니까, 몇 년 만이었다. 열쇠를 꽂아넣고 문고리를 돌리자 문은 쉽게 열렸다.


추억들이 그런 것처럼 집 또한 먼지만 가득 쌓여 있었다. 이렌드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들고 있던 묶음철은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두었다. 그러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직도 머리가 복잡했다. 다행인 것은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점이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결정을 내렸다. 십여 분 동안 앉아만 있던 이렌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을 열어보니 라이터가 여러 개 있었다. 아버지는 종종 담배를 피우셨고, 그걸 볼 때마다 어머니가 잔소리했던 기억이 있다. 이렌드는 그중 하나를 꽉 쥐었다. 켜보니 다행히 작동하고 있었다.

라이터를 가지고 거실로 나온 이렌드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묶음철을 들었다. 그리고 라이터에 불을 붙여 묶음철에 가져다 댔다. 불은 금방 묶음철에 옮겨붙었다. 이렌드는 그것을 툭,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남은 라이터들을 모두 꺼내왔다. 하나하나 불을 붙여 똑같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문서와 유일한 추억인 집이 타들어 가는 것을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이렌드는 열쇠까지 떨어트린 후에 천천히 집 밖으로 나섰다.

…과거를 없앨 수는 없다. 완전히 잊을 수도 없을 것이다. 알게 된 이상은. 하지만, 태워버릴 수는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과 선택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렌드 자신의 판단은 이것이 맞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 소중한 것이 있다. 그것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이렌드는 꽤 오랫동안 집을 바라보았다. 그가 뒤돌아 걷기 시작했을 즈음에야 집의 겉면이 타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타는 냄새가 났다.



힐링이 필요하다. 아인실과… 몬드를 보러 가야겠다. 내 소중한 동생들.



***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과거를 다시 찾아냈다. 신문은 대부분 회수했다고 했는데, 그때 회수하지 못한 것이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었다. 이렌드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그것을 깊숙이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진실을 알았을 때, 집과 문서를 모두 태워버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더라. 분노? 증오? 복수심? 아니. 그저 괴로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은 차갑게 식어갔다. 몬드가 사과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까 자신이 몬드를 용서할 필요도 없다. 대충 그랬던 것 같다.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보다 더 몬드가 상처받을 거라고. 데니엘 캐슬라와 이렌드 윈저가 다르듯, 어린 몬드와 지금의 몬드도 다르다. 그렇기에 죄를 묻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죄를 묻겠는가. 이것은 용서가 아니다. 없던 일로 하기로 자신과 약속했을 뿐.

…그 아이가 읽은 것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상처 하나 없이 별이 된 것이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저기에 있는 신문도 나중에 태워버려야 할 것이다. 영원히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그게 한때 삶의 빛이었던 소중한 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일 것이리라.



도서관을 나오며, 이렌드는 방금 했던 생각을 정정했다. 아직도 내 삶의 빛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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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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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네임 Mystic. 

스테판 제시입니다.

이 수첩은 누군가에게 전해질지도 모르고 전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입니다. 유언장과 비슷하죠. 만약 전해진다면 나는 이미 죽어있겠군요...



암흑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그리고 동료들이 다이버들에게 무참히 살해되고 죽어나갔습니다. 다이버들은 무자비하고, 또 악랄하며 교활합니다. 그들을 조심해야해요.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래왔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살아있나요? 수첩을 보고있다면 살아있겠군요.

부디 끝까지 살아남아주세요.



그가 죽었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어요. 그가 다이버에게 물어뜯겨 포식당하는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도 쓰지 못한채, 덜덜 떨다가 미친듯이 도망쳤습니다. 아직도 손이 떨립니다. 펜이 잘 쥐어지지 않아요.

나는 그 자리에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살고싶어요.



나는 어느새 혼자가 되었습니다. 혼자 도망다니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있어요. 불면증이 심해집니다. 잠에 들어도 악몽에 시달리기 때문에 잠에 들수가 없어요. 그가 나타납니다. 왜 너만 살았냐고 나를 원망해요.

괴롭습니다.



베가스에 결계가 쳐져있다는 암호를 풀고 그쪽으로 갑니다.

부디 그 곳에서는 안전하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베가스의 결계 안으로 도착했습니다.

의외로 많은,또는 적은 수의 선수들이 보여요. 안도하는 한편 한켠의 기분이 처참하네요.


가현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여자인줄 알았어요.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그에게 실례를 저질러버렸습니다. 초면인데 그쪽도 아가씨냐고 물어봐버렸어요. 표정이 굳어지던데 어찌나 미안하던지...나중에 그거에 대해서 한번 더 사과해야겠습니다.

게오르그 프란츠. 빨간 후드를 쓴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낯을 조금 가리는것 같긴 하지만 굉장히 귀여운 사람이네요. 불편한데가 있는것 같은데 괜찮아졌으면 좋겠어요.

부디 죽지 않기를...

고등. 생선 탈을 쓰고있는 이상한 여자아이입니다. 처음에는 경계했는데 아이가 사람을 끌어당겨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이 아이가 살아있어 왠지 축복받고 위로받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아아, 이 아이는 끝까지 살아야해요.

몬드 가비아. 아몬드를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입니다. 머리카락이 예쁘고, 사람을 위로할줄 알아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번에 사람의 불안감을 녹여주었으니까요...

이 아이도 소중합니다.



다이버들이 이 몇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다고 합니다. 숫자는 넷. 그들은 밤마다 우리를 죽이고,우리는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싸워야 할겁니다.

끌리지는 않아요.

빌어먹게도.



메이슨 클라크.

첫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이야기도 나눠보지 못했는데...

'인간과 친한 개를 조심하라' 무슨 이야기일까.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겁이 나서 도저히 머리가 굴러가지 않아요...한심하기 짝이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볼것을...



코난 베일리. 언젠가는 본적이 있는것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불안에 떠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어요. 옛날의 나를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부디 나처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죽지 말아주렴. 부디...

그래주렴.


나는 부탁을 자주 합니다.

내 자신은 굉장히 무력해요. 

내 능력 밖의 것일때나 내가 정말 간절히 원할때에 부탁을 합니다. 당신이 만약 내 부탁을 받았던 적이 있다면 그것을 꼭 들어주세요.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무너져버릴겁니다.

이미 무너져있는 모래와도 같지만...더이상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카테. 굉장히 아름다운 신입니다. 

정말로 보고있자면 밤하늘을 보고있는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예요. 신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귀여운것 같습니다. 신이 맞는걸까?:)

이렌드 윈저. 상냥해보여요. 나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어보이기도 하지만...? 그도 어딘가 위태합니다.

곁에서 지켜주고싶지만..나는 그럴만한 존재가 아니예요.

그의 곁에는 그의 여동생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굉장히 보기좋아요.



무투.

다이버 넷의 표몰림.

보기 좋았던 사람이 하나 죽었습니다.

이렇게나 무력할줄 전혀 몰랐어요.

지켜보기 괴로워서 또 도망쳤습니다.

미안해요



가현이 죽었습니다.

사과를 전해주어야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나는 나약해 빠져서...그를 지켜줄 힘조차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겁니다.

도망치지 않을거예요.

가만있지 않을겁니다.



오늘부터 나는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싸울거예요.

그들도 많지만 우리도 많습니다. 충분히 맞설수 있을겁니다.

나는 누군가를 몰아갈거고,그것은 그 사람을 죽일거예요. 나는 평생토록 죄책감을 가지며 살아갈겁니다.

나를 용서하지 마세요.



로데오 칸.

대화를 나눈적이 있던 사람인데 무참히 죽었습니다.

보러가고 싶지 않아서 움직이지 못했어요.

만약 그랬다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려 또 무너져버릴것만 같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루디 페스칼.

날개를 가진 사람. 엠파이어의 천사.

말을 심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만약 내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면 나는 또 당신에게 계속해서 용서를 구할게요.

그래도 나를 용서치 마세요.



몬드 가비아가 죽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 어여쁜 아이. 나에게 백합꽃을 전해주었던 아이. 지켜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아, 나는 이렇게나 나약해요.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습니다. 편해지고 싶어요.

또 다시 도망치고 싶습니다. 이 삶에서,그리고 지옥에서.



아이는 다른 사람들 처럼 잠든듯이 누워있습니다.

손재주가 전혀 없는 나로써는 그 아이가 접어주었던 백합꽃을 접을 수가 없어요.

추모할수도 없어요.

한심하기 짝이없습니다...



또 살아남았습니다.

실은 나에게 투표했어요.

많이 지쳤으니까.



+



이것 저것 이야기가 쓰여진 수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붉은 눈의 여자는 몇 장 남은 수첩의 빈 페이지를 뜯어내고는 수첩을 제가 피운 자그마한 모닥불에 던져넣는다.

수첩이 타들어가던 것을 물끄러미 보던 그녀는 조용히 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무릎을 끌어안는다.

오랜시간 적어왔던 자신만의 준비가 일렁이는 불 속에서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들어간다.

이제 그녀에게는 더이상 그것이 필요가 없었다.

전해내릴 이야기도, 혼자만의 준비도. 더이상은 필요치 않았다.

그녀는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더이상은 도망치지 않으리라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유언장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

이 지옥에서 걸어 나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녀는 손을 움직여 누구에게나 다 보이는 제 능력으로 불을 눌러 그것을 조금씩 사그라들게 만든뒤 몸을 일으켜 망설임도 없이 발을 옮겨 광장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지 않을것이라고 몇번이나 되뇌이며.

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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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몸을 염화가 감싸간다. 뜨거웠다. 아니 뜨겁지 않았다. 스스로 그렇게 되뇌며 동생을 구하길 바랐다.

 

  신기했다. 이 곳은 바람도 불지 않았고 무음의 공간마냥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들려오는 동생의 소리에 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이 곳? 아니면 발을 더 빨리 굴려서라도, 뛰어다녀야하지 않겠어? 네 특기잖아. 식은땀으로 온 몸이 축여져 항상 그랬던 것처럼 왼다리를 목책 같은 것에 짓눌리고, 그걸 치워내느라 손은 화상을 입고. 지져지던 볶아지던 들어 올리다 다시 암흑을 맞이한다.

  오늘 꿈에서도 **을-쓰인 것 위에 펜으로 덧칠이 돼있다- 구하지 못 했다. 어제도, 그제도, 쭉. 더운 날의 습기처럼 달라붙어와 괴롭힌다.

 

불빛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 결계 속의 밤.

  첫째 날은 메이슨, 어제는 아인실과 가현... 글쎄, 오늘은 잘 모르겠다. 받았던 종이와 펜, 무전기는 사용을 대부분 하진 않았지만 가지고는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걸 준 사람들은 다 죽었군. 신기해라. ..참, 신기해하면 안 되나. 오히려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 것 같으니까 조용히 다녀야겠다. 등골이 약간 서늘한 느낌이 들긴 하는데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어.

  선수들 중엔 남자아이가 한 명 있었다. 지크 해머라고 했는데 **와 참 닮았다. 그러고 보면 동생은 나와 성격이 참 달랐는데. 여하튼.. 그랬다. 터무니없는 가격(만페니였지, 아마?)이었지만, 스스럼없이 먹을 것을 내어줬었다. 나가게 되면 배로 갚는단 소리는 했었는데, 할 수 있을 진 모르겠다. 농담이었는데. 그래도, 지크에겐 최대한 해주고 싶으니까. 동생한테 못 해준 걸 대신 한다는 보상심리여도 좋아. 꼭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한나 씨가 지목당했다. 왜? 개라는 말에 혼선이 생겼나? 개라고 해봤자, 첫 날 죽은 메이슨의 말인데. 왜들 흔들리는 건지 모르겠다.

  담배를 건네줬었는데, 이상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금방 따라갈게요, 라고. 아무도 그녀를 변호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왠지 느낌이 쎄해 말하진 못 한 것 같아 더 미안했다. 원망하진 않을까?

 

  무릎이. .-@또 쑤신다ㅡ 오늘은 여기까지 적어두기로..-// 할까ㅡ-ㅣ 내일은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해봐야지, 지크한테 또 통조림 까먹고.

 

 

  누구지? 아직 다이버의 밤까지 시간이 남았나. 어차피 문도 잠겨있는데 자는 척 해ㅇ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남은 여백은 정신없이 튄 피로 얼룩져있다)

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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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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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것이 부서져버려서 다 해진 곰 가죽으로 감싸서는 숨겨버렸다.


나는 늘 실체 있는 적과 싸웠다 악어..매..사자 등 거대한 이름앞에 묶인 그들을 상대할때는 오직 전쟁과 싸움에만 집중할수 있었다.


편리하게 죄책감을 숨길 수 있는 이유 또한 가질 수 있었다 '부족을 지키기 위해' 따위를 편리한 방패 삼아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곰의 전사 중 한 명으로 나누어 짊어져야 할 죄책감이 아닌 '루엔' 일가의 가족으로써 짊어져야 할 짐에 나는 짓눌려 결국에는 이름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나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을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라는 것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산산조각 난 마음을 이어 붙여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혼자가 편해'라며 중얼거리며 살아왔다.


마음을 감싼 가죽은 생각보다 질겼고 부서진 마음으로 빗발치는 죄책감의 화살을 막아주었다 '혼자가 편해'라고 다시 한번 중얼거리며 산산조각 난 마음을 잠깐 열어 혼자 붙이려고 애쓰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어린애처럼 흐느꼈다.


앞을 보지 않고 마음 만을 들여다보며 살아오던 어느 날 내게는 기회와도 같은 것이 찾아왔다.


'이 결계 안이라면 같은 공포를 공유했던 이 사람들이라면 나도 예전처럼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처음으로 희망을 가졌다.


물론 그 알량한 희망은 결계를 타고 공명하는 비명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첫날은 이제부터라도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다음 날은 명예롭지 않은 죽음에 분노하는 척을 했다. 


그다음 날은 죽음 그 자체에 두려워 벌벌 떨고 말았다. 


어느새 칭칭 싸매던 곰 가죽은 다 해지고 망가졌다 조금씩 밀려들어오는 죽음의 공포와 내가 회피하던 과거의 죄책감이 나를 조금씩 조금씩 좀먹기 시작했다.


숙소에 가득한 공포에서 도망쳐 나오면 그것보다 두려운 적막이 가득했기에 나는 억지로라도 다른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물론 결국 내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은 2층의 적막과 7층의 침묵 뿐이었기에 나는 더욱 무너져만 갔다.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마음을 간신히 챙기고 희생자를 뒤로하고 숙소로 들어가 또 자기 자신을 혐오하며 머리를 부여잡으려는 때에


그녀가 내게 찾아왔다.


"백화점에 아주 크고 편한 침대가 있어서... 오늘 나랑 같이 잘래요?"


"여기... 너무 조용하지 않아요? 언니, 무섭죠?"


나도 모르게 '네 너무나도 무서워서 울어버릴 것만 같네요'라고 말하려는 걸 참고는 말한다 '만약 제가 다이버라면 어쩌시려고 그런 무모한 호의를 베푸십니까?' 나에게서 떨어지라는 경고의 칼날을 잔뜩 담아서는 내뱉는다.


"언니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내 선택은 나에겐 제일 올바른 거예요"


돌아온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어쩌면 저렇게 강할 수 있을까' '자기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걸까''난... 난... 그러지 못했는데..' 질척질척한 핏덩어리가 된 누군가를 떠올리고 찢긴 이름을 떠올리며 주저 앉을 것만 같은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고 얼굴에 간신히 미소를 띠고는 답한다.


"그러면... 내일부터 그렇게 하도록 할까요"


대답을 듣고 해맑게 웃는 그녀가 사라져가는 걸 보고서는 방안으로 들어온다 놀랍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째선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서 해맑게 웃은 채 누워있는 카치나 인형을 꺼내 안고 앉아서는 중얼거린다.


"구한 적도 믿은 적도 없는 신이시여 만약 계신다면 염치없지만 이 아둔하고 나약한 곰의 청을 단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제발... 저 강한 소녀가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중얼거리고서는 인형을 꽉 끌어안은 채 나지막이 한마디를 더 중얼거리고서는 침대에 눕고선 눈을 서서히 감는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시다면 저 또한 그 소녀와 함께 내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내일을 기대한 채 꿈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갔다.


-


백화점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옵니다.


다이버는 무엇보다 빠르게 살육을 마친 후, 어둠 속으로 멀어졌습니다.


모두의 발언권이 돌아옵니다.


몬드 가비아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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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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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즐거운 곳이에요.

모든 정보가, 어디로 떠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세계와 소통하게 해 주는 곳.

누군가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잉크와 종이 냄새로 스며드는 곳.

그래서 난 도서관을 좋아해요.


비록 지금은 책을 볼 수 없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는 기분인걸요?


바람이 불어, 높이 올려져있던 신문이 한 장 떨어졌어요.

어라, 뭘까, 10년이 넘은 물건.


...어?





이건 누구?


머리색도.

눈 색도.


나를 닮았어.


그리고....


캐슬라.




머리길이가 다르잖아요.

닮았을 리가 없어.

그렇죠?




...나일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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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은.

죽으면 별님이 된대요.


몬드도, 별님이 될 수 있을까요?

몬드는 착한 아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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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전해질지 모르겠소.



이것을 쓰는 나는 베가스라는 곳에 있소이다. 나는 암호를 발견했다오. 그걸 풀어내니 어느 좌표가 되더군. 그곳이 바로 이곳이오. 결계가 쳐져 있어 바깥보다는 안전하오. 바깥보다는. 아무래도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지만, 일단은 마음을 놓기로 했소이다.


세상이 황량하기 그지없소이다. 여기 저기 건물의 잔해가 널려 있고, 어디서는 그… 미사일이라고, 우리 가문의 이기어검술이 걸린 검 마냥 하늘에서 떨어져 폭발하고. 다이버들이 판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오. 나는 중원을 좀 일찍 나섰지.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하늘강의 물이 말라버렸는데… 지금은 그곳이 어떠할지 모르겠소이다. 조금은 상황이 나아졌길 바라오. 또한 그대도 무사하기를.


아가씨, 흑요를 기억하시오? 그래, 내 형님이 만들어주셨던 그 검 말이오. 그리고 그대가 흑요석처럼 반짝인다며 그리 이름을 지어주었지. 이제는 그 아이가 없으면 잠들 수 없소이다. 그 아이가 품에 있지 않으면 잠이 안 와. 물론 그 아이를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나와 그대, 둘 뿐이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밤에도 몇 번이나 깨어 확인하게 된다오. 흑요를 안고 있으면 그대가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래… 나는 지금 중원이 그립소. 너른 구름 위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고, 그 위에는 대숲이 넓게 펼쳐져 있지. 계곡 사이로 강이 흐르고, 그 위로 낚싯대를 드리우던 이들도 있었고. 무인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던 대련장이, 검을 담금질하며 땀을 닦아내다 웃으시던 형님이, 흑요를 들고 싶다고 낑낑거리던 그대가… 그대가 그립소.


그래, 그대가 그립다오. 내 머리를 빗어 비녀로 틀어주던 그대가. 옷자락이 치렁거린다고 불평하자 묶어주던 그대가. 형님께 받은 흑요를 내가 겨우 들어올리자 손뼉 치며 기뻐하던 그대가. 흑요를 손질하던 내 옆에 와 검날에 얼굴을 비쳐보던 그대가. 왼손의 붕대를 감싸 잡아오던 그대가… 이기어검술을 다루지 못해 가문에서 홀대받던 나를 챙겨준 것은 그대와 형님뿐이었지. 그것은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오.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었지. 그대는 살아있기로 약속하였고. 지키려고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소이다. 세상이 정리되고 나면 하늘강에서 다시 물 차며 실컷 놀았으면 좋겠소이다. 이미 그럴 나이는 한참 지났지만 말이오. 하지만 그대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소.


내가 편지는 정말 못쓴다고 타박하던 그대가 생각나는군. 그대가 가르치지 그러셨소. 글재주가 있는 건 그대였으니까.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막상 이리 쓰고 있자니 하나도써지질 않는구료. 그저 그대가 그립소. 그립다라는 말로만 한 장을 채울 수 있을 것 같군.


이곳은 벌써 날이 밝고 있소이다. 그대도 이 빛을 보고 있길 바라오. 오늘은 이 거리를 탐색해야 하니 조금이라도 눈을 좀 붙여야겠소이다. 이만 줄이겠소. 그대가 무사하길 바라오.



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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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부족의 '루엔' 가문에는 두 남매가 있었다.

덩치는 크지만 어디에도 두각을 발휘하지 못하던 '트레이시 루엔' 체격은 곰치고는 평범하지만 전술, 전략의 습득이나 무기를 다루는 능력이나 모두 뛰어났던 '젤라 루엔' 두 남매는 말을 떼고 걸을 수 있게 될 즘에 남매는 서로에게 주어진 것과 그로 인한 차별을 인지했다.

트레이시는 그것을 덤덤히 받아들였지만 젤라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젤라는 자기 부모님과 달리 동생을 버리고 걸어나가기에는 너무 물렀다.

철퇴를 휘두르고 나면 트레이시가 휘두르다 자빠지지 않을 때까지 옆에 있어줬고

오늘 자기가 배운 전술이 있다면 트레이시가 이해할 때까지 같이 읽어줬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도 결국에는 트레이시를 인정해줬다 루엔의 전사만이 받을 수 있는 머리띠를 둘러매며 그 어떤 때에도 묵묵히 참던 동생은 처음으로 눈물을 쏟아냈고 젤라는 그걸 보며 마냥 기뻐했다.

트레이시가 젤라의 눈을 한참 내려다볼 만큼 크고 젤라가 더 이상 철퇴가 아닌 지휘관의 검을 잡았을 때 젤라의 철퇴가 어느새 트레이시의 것이 되었을 때 둘은 더 이상 단순한 가족도 상관과 부관 관계도 아닌 그런 것을 초월한 사이가 되었다.

전쟁에서는 등을 맞대고 싸웠으며 펼친 지도를 놓고서는 우리 병사를 몇 명이나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고 일이 끝나고 나면 술 한잔하며 의미 없는 이야기를 던지며 흠뻑 취하기도 했다.

리고 세상이 합쳐지기 시작한 날 이길수 없는 전쟁이 그들을 찾아왔다 밀려오는 적의 군대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성문을 걸어 막고서는 '여기가 뚫리면 곰은 멸망한다'라는 책임감을 양 어깨에 지고선 갑옷처럼 두르고서는 그곳에 묵묵히 서있는 것뿐이었다.

도망자는 늘어만 갔고 그로 인해 처형되는 이들도 동등히 늘어갔다 막중한 책임감은 두꺼운 갑옷이 아닌 양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어만 가던 때 상관은 부관을 찾아가 가족으로써 말한다.

"병사들을 추슬러 도망치자 트레이시"

"이건 이길수 없는 전쟁이다"

그 말에 트레이시는 빙그레 웃었다 비참하다듯이 소리 내며 눈물까지 흘려가며 그렇게 웃었다.

분명 웃고 있었다

"우리에게 도망갈 곳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얼마 안 가 상관은 도망자로써 묶여있었고 부관은 묶인 그 옆에 서있었다.


누군가는 분명 짊어져야할 짐이었고 그것은 병사들의 몫이 아니었다 부관은 떨리는 손으로 철퇴를 꽉 쥐고 있었고 상관은 도망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안하다- 법을 따를 뿐입니다 부탁한다- 노력하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맙구나- 집행하겠습니다

의미 없는 대화가 끝난 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많은 것이 끝났다 철퇴에서 흐르는 붉은 것과 자기가 만들어낸 참극을 보고 부관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날 성문은 열렸지만 남은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승리를 만끽하러 서서히 다가오는 적의 군대 한복판으로 트레이시는 뛰어들었다 아직도 핏자국이 가시지 않은 철퇴로 기고만장하게 서있던 지휘관의 머리를 박살낸 후 소리쳤다.


그 순간만은 수적 열세도 전략도 전술도 승패를 가를 수 없었다 곰들은 살아남을 생각이 없었고 적들은 명백한 승리 앞에서 목숨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지휘관조차 머리가 뭉개져 질척질척한 덩어리가 된 상태에서는 더더욱


이 땅에서 죽음을 택하겠다고 외친 자들이 살고 싶어 도망친 자들을 죽이고 죽음을 감수한 자들이 살려고 한 자들을 쫓아낸 기괴하고 우스운 장면이었다.


이길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그 기쁨에 감겨있을때 그들의 지휘관은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더니 결국에는 그들 곁에서 사라졌다.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트레이시는 드디어 밀려오는 감정을 받아들일수 있었다.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자신의 가족 젤라를 한없이 추억하며 울부짖었다.

루엔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던 머리띠를 갈가리 찢어버리며 울부짖었다.

그가 짓이겨진 그의 흔적이나 다름없는 철퇴를 부여잡은 채 땅에 머리를 처박고서는 울고 또 울었다 세상이 무너져라 울음소리를 끝없이 토해냈다.

그리고 다음날 세상에는 루엔이 둘 없어졌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상에 '트레이시 루엔'도 '젤라 루엔'도 아닌 '젤라'가 분명 태어났다.


분명 철퇴를 들쳐멘체 웃지도 울지도 못한채로 마음이 부서진 채 서있었다.

Posted by Rosaly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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