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열. 스물. 숫자를 헤아린다. 결계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영리하다. 속으로 감탄한다. 선수들은 겨우나마 몸을 누일 곳을 찾아 잠깐동안 안식에 빠진 모습이다.
만신전의 도달. 엠파이어의 합류. 다이버의 습격. 제 3세계는 검은 심연이자,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의 영역에 가깝다. 그렇지 않은 이상 이 검은 심연 속에서 지하와 지상을 이은 신들의 기둥이, 발길이 닿는 길마다 전부 몽롱한 별하늘인 환상의 나라가 어느 순간 갑자기 존재할 리 없다. 두 개의 씨앗이 성스럽게 조우해 인간이라는 한 세계를 창조하고, 빅뱅이라 불리우는 신비한 폭발이 이 세상에 우주를 만들어 냈다. 허나 제 3세계는 기원이 없다. 모든 것이 어느 순간부터 존재했을 뿐이다. 그 가능성은 결국 무한으로 변모해 제국과 신들의 거처를 낳았다.
어느 누구도 역사로 기록하지 못한 최초는 기원의 자격을 잃는다.
그들은 '꿈 꾸는 소녀'가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녀의 지독한 악몽이 이 세계를 낳았다 했다. 나는 믿지 않는다. 가이아는 혼돈의 씨앗에서 태어나 빛과 어둠을 반으로 나누고, 하느님은 태초에 빛이 있으라 말하였다. 우주는 대폭발을 일으켜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성운과 행성을 몸 안에 세포처럼 품었다. 겨우 누군가의 잠이 내 세계와 생각의 지축이 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녀의 꿈이 나를 빚어냈다면 나는 주인공이 되지 못할,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가. 잘못된 일이다.
한쪽 주먹을 쥐었다 편다. 검은 심연의 하늘을 뚫고 세상으로 낙하하는 다이버들을 본 순간 나는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억척같이 살아왔다. 수십 구의 다이버, 수백 구의 시체. 그 얼굴들을 기억하고 똑똑히 새긴다. 그 때부터 나는 나를 잊었다. 나의 얼굴은 중요치 않다 스스로를 세뇌하며, 고개를 치켜올린다. 나는 다이버, 선수, 혹은 그 속에 섞여있을 독한 뜻을 가진 배신자들.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손에 쥔 초대장을 우그러뜨린다. 나는 이후 일어날 몇 가지의 경우의 수를 속으로 헤아린다.
천상의 전장. 엠파이어는 완전히 몰락했지만, 수장이라는 족속들은 여전히 꿈 속에 붙들려 있다. 그 꿈의 전장을 빌린다면 완전한 꿈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
서로에게 아가리를 벌린 선수들. 그들은 머리를 잃는 순간 필연 방황하리라. 내가 얻어내지 못할 일이라면 그들의 손으로 파멸을 쟁취하는 것이 옳다.
혹은 완전한 재건. 다이버들이 몰려오는 문을 닫고, 부서진 폐허를 적당한 낙원으로 바꿔놓는 것. 허나 나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믿음이 없는 방목은 결국 땅을 사막으로 바꿔놓을 뿐.
어느 쪽이든, 나는 조금 더 높은 자리에서 그들을 지켜볼 것이다.
나는 기원을 부정하는 자다. 허나 파멸을 두려워한다.
어떤 방식으로 종막을 맞을 지언정, 나는 반드시 이 미친 세상을 거꾸로 뒤집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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