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렌드 윈저입니다. 아마 당신이 이걸 읽고 있다는 건 제가… 제 손으로 모든 걸 끝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겠죠. 내 일은 내가 끝내고 말아야 하는 성미인데, 참 안타깝게 됐습니다. 복수도 못 이룬거겠고요. 아무래도 편히 눈을 감을 것 같진 않군요. 동생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일단 절 믿어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합… (이후로도 길게 점들이 늘어져 있다. 쓰면서 무언가를 고민한 듯 하다.)
편하게 써야겠다. 사실 존대는 익숙하지가 않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습관처럼 입에 붙은건데, 꼭 여기서까지 존대를 써야 할 필요는 없겠지. 보고 있지? 사실 네가 지금까지 봐온 이렌드 윈저와 진짜 이렌드 윈저는 조금 차이가 있어. 일단은, 내가 모두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 죽어야 하는 사람은 죽어야겠지. 나를 위해서라도. 고쳐보려고 했지만 죽어도 이 생각은 안 고쳐지더군. 부디 명계의 여러분, 그리고 이걸 읽고 있는 당신. 이해해주기를 바라. 내 감정이 조금이라도 흔들렸던 적은 아인실과 몬드 때밖에 없었어. 나는 사람 차별이 심한 놈이거든. 나머지는 뭐, 글쎄. 어딘가 시큰하긴 했겠지만.
그래,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날 믿어준 사람들, 모두 고마워. 근데 너무 무른 거 아냐? 내가 다이버인 걸 숨기고 속이면서 접근했으면 어쩌려고 했어? 나름대로 하는 잔소리야. 여기까지 살아남은 것도 기적일지도 모르겠다. 온갖 눈에 띄는 행동은 다 하고 다녔는데 말이지. 아. 착각은 하지 마. 정말로 다이버라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내가 다이버였다면 이런 걸 남길 리가 없겠지. 그리고 사실은 말이야… 당신의 그 무름이 너무나도 부러워. 나도 그렇게 물러 터졌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중요한 거야. 특히 널 믿고 먼저 위험을 감수해 찾아와 준 사람에 대한 믿음은 더더욱. 평생 간직하고 살기를 바라. 나는 그걸 잃어버리고 너무나도 많은 후회를 했거든.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살았어. 정을 주지도 않았고. 그래서 여기서라도 믿는 연습을 해봤는데, 잘 된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당신을 믿는 것 같았어?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로 다행인데.
사실은 내가 이걸 남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야. 그렇다면 일단은, 둘은 살았다는 뜻이잖아? 누굴 지칭하는거겠어. 살아. 둘 다. 살아서 행복해져. 둘 다 힘들게 살아왔잖아. 너희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 …얼마 안 남았잖아. 둘 다 알고있지? 조금만 더 힘 내. 나를 위해서라도, 너희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사실 나는 더이상 잃을 게 없는 사람이라서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을지도 몰라. 여러번 생각해왔어. 이쯤 하고 간다면 반 정도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
나는 거짓말 한 적 없어. 어이, 다이버. 당연히 보고 있겠지? 날 먼저 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거야. 분명히. 여기저기 움직이고 다니면서 온갖 짓을 다 했거든. 동생들의 복수다. 하하! 음, 이렇게 쓰니까 적당히 건방져보이고 좋네. 허세 좀 부려봤어.
그리고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고한 그 아이… 나는 네 탓을 하지 않아. 네가 거짓말을 했을 정도라면, 아마 내가 네 상황이었을 때 나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거든. 너에겐 너무 미안해. 너는 잃을 게 많은 사람인데, 아직 죽으면 안 되는데 마치 나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네가 바라는 걸 지킬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만약의 상황이라면 당연히 지키지 못할거야. 나는 잔인한 사람이니까.
사실 이곳에서 내 세계를 둘 다 잃어버린 순간부터 나는 이미 죽어있었을 지도 모르지. 내가 다이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여러번 했어. 생각없이 다음엔 누구를 죽여야 하지, 하는 모습을 보고 말이야. 이게 인간이야, 다이버야? 도대체가 알 수 없잖아. 그래도 너를 보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당연히 다같이 보고 있겠네. 너희를 보면서 아직은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안심을 했어. 나를, 동생들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거기도 했으니까. 나는 상실을 위한 살인만을 해왔는데 지금은 지키기 위한 살인을 하고 있구나.
아마도 한 명 남았을 걸. 음, 그 아이는 내게 거짓말을 했다고 했어. 내 머리는 여기까지밖에 돌아가지 않네. 그 아이는 내게 왜 거짓말을 했을까? 당연히 이유가 있어서겠지. 미안해, 모두들. 내가 줄 수 있는 힌트는 여기까지야. 알아낸 게 여기까지라는 뜻이지.
아, 다들 배반자를 잊으면 안 돼. 살아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미 죽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리고 아마도 살아있을 가디언. 너무 자책하지 마. 다이버들은 우리 생각보다도 더 머리가 좋은 것 같으니까. 사실 이미 내 머리 위까지 올라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죽어버렸으니, 다른 사람을 지켜. 이미 한 번 지켰잖아? 넌 할 수 있어. 얼마 안 남았으니 너도 조금만 더 힘을 내. 살아서 나가야지. 넌 분명히 살아서 해야 할 게 있을 거야.
(여러번 펜을 제자리에서 톡, 톡 두드린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더이상은 쓸 게 없네. 그럼 이만, 여러분이 믿어주고 도와준 이렌드 윈저는 가봅니다. 수고했어. 당신들의 끝은 부디 해피엔딩이기를 바라. 나는 이만 동생들에게 가볼게. 볼 낯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God Bless you.
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친구의 입버릇이야. 무슨 뜻이냐면, 그냥 잘 해보라고. 넌 잘 될 거라고. 그런 거라고 생각해. 애석히도 나에게 매번 저렇게 말해준 친구는 내가 내 손으로 죽였지만. 첫번째 살인이었지. 아, 쓸데없는 얘기를 해버렸네. 그럼 이만 줄일게.
p.s - 설마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 라는 말에 실망한 건 아니지? 친구가 되고 싶었어? 하하. 겉면은 위선 뿐인 놈을 뭐하러 사귀려고. 그래도 나도 제법 즐거웠어.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p.s 2 - 데니엘 캐슬라라는 애가 있어. 걔는 정말로 소심하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녀석이라서, 친구 만드는 것도 못하는 애거든. 자학이나 하면서 살기나 하고 말이지. 너희가 걔의 친구가 되어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너희가 걔를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웠어, 다들.
p.s 3 - 사실 빠르게 쓰느라 좀 대충 썼어. 이해해주길.
p.s 4 - 아, 까먹을뻔했다.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두 개야. 운동화랑 돋보기. 각각 이동 포인트+1, 탐색 포인트+1. 요긴하게 쓰도록 해. 먼저 찾은 사람이 임자.
* * *
머리가 아프다. 결국 또 살아남았다. 쓸 데 없는 일까지 떠맡아버렸고. 이렌드는 작게 혀를 차며 어제 써놓은 종이를 찢어버렸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쓴 것이었는데, 이제는 필요 없겠지. 아마도. 머플러를 풀어놓고 침대에 털썩 누워버렸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겠지. 그리고 일이 복잡하게 꼬일 것 같다.
첫번째, 소중한 것을 잃었다. 되찾을 수 없다.
두번째, 남자.
세번째, 검은색.
네번째, 기도.
다섯번째, 태워버렸다.
…하나를 제외한 모든 단서가 가르키는 단 한 사람. 이렌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픽 웃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헛웃음은 점점 더 커져갔다. 하, 하하. 하하하! 혹시 내가 정신병에 걸렸나? 정신병에 걸려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건가? 동생들의 죽음에 미쳐버렸어, 이렌드 윈저? 대답해 봐, 데니엘. 내가 미쳤니?
그리고 뚝. 웃음은 그쳐버린다.
그럴 리가.
이렌드는 천천히 정리하기 시작한다. 똑같이 하나를 제외한 모든 단서가 가르키는 사람이 있다. 어제부터 추측한 거지만, 오늘 찾은 다섯번째 단서 역시 그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가 애매하긴 하지만. 혼선을 주려고 했나. 다른 사람들이 날 믿는 걸 시험해보기라도 하나? 나쁘진 않은 기회다.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일을 맡게 된다면, 그만큼의 신뢰도 필요할 터. 그런 의미의 시험이라면 받아줄 생각이 있다. …믿어준다면, 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믿음을 얻지 못해서 죽게 된다면 나라도 믿어야겠지. 내 이후의 사람들을. 믿음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믿는 것도 중요할테니.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가 이 연쇄를 끊어줄 것이다. 분명히.
변명을 해 볼 생각이다.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믿어줬으면 좋을텐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나는… 동생들을 구해야 해. 다시 데려와서, 내가 지킬 곳에서 함께 있어야 해. 그러면 지금까지의 죗값을 모두 치를 수 있겠지. 지금 이것 또한 변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짜 변명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생각이 맞다면…
첫번째,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 있다. 오래 전에.
두번째는 말할 것도 없겠지.
세번째, 얼굴을 살펴보라. 애매한 것은 이쪽.
네번째는 거짓.
다섯번째는, 그 또한 무언가를 태워버렸다. 사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판단은 당신들에게. 확실하진 않아.
조금만 기다려, 아인실. 몬드. 금방 보러갈게. 저승에서든, 이승에서든. 그땐 너희에게 준 상처만큼 사과를, 사죄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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